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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0 오후 3:03:41 입력 뉴스 > 칼럼&사설

[칼럼] 김영란법에 거는 기대
김홍수(조선일보 경제부 차장)



  조선일보 김홍수 차장

김영란법 시행이 1주일여 앞으로 다가왔다. 경제 담당 기자로서 김영란법은 탐탁지 않았다.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게 확실해 보이고, 취재에도 많은 불편이 따를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국민의 심사를 어지럽히는 일련의 부정부패 사건을 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자정(自淨)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외부 힘(법)을 빌려서라도 우리 사회·경제 시스템을 쇄신하지 않으면 답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인으로서 익숙했던 관행, 구습(舊習)과 결별하지 않으면 독자의 신뢰를 얻기 어렵겠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유럽 특파원 시절 선진 사회에서 가장 부러웠던 점은 높은 시민 의식이었다. 노르웨이 시골 도로변에서 접했던 과일 무인(無人) 판매대, 스위스 로잔에서 본 개찰구도 역무원도 없는 지하철, 부모 소득에 비례하는 프랑스 학교의 점심값과 신고 소득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시스템…. 생활 현장에서 체험한 선진 사회 모델은 상호 신뢰 없이는 존속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뒤처졌던 우리나라가 비장의 무기로 삼은 것은 압축 성장이었다. 국가 관리형 자본주의 모델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하지만 시민의 교양, 의식 수준은 압축 성장이 안 되는 분야였다.

 

한강의 기적을 낳은 추격자형(fast follow) 경제 모델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추격해온 중국에 하나둘 덜미를 잡히고 있다.

 

반면 우리가 하루빨리 도달해야 할 선진국형 창의적 선도자(first mover) 모델은 아직 요원하다. 창의적 선도자 모델은 개인의 개성, 자율, 가치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토론과 합의를 중시하는 문화가 있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공동체 구성원의 정신적 내공이 한 단계 더 올라가야 한다. 김영란법은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정치인, 관료, 학자, 언론인, 기업인들은 인맥을 쌓기 위해 상가, 결혼식장, 술집을 전전하는 시간을 줄이고, 자기 계발에 더 많은 품을 들여야 한다. 이런 노력이 축적되면 학연·지연에 기반한 '연줄 사회'가 '실력 사회'로 전환하는 단초가 마련될 것이다.

 

김영란법은 양극화 현상의 뿌리인 강고한 기득권 카르텔을 깨는 데도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청년들이 '헬조선'을 부르짖는 것은 인턴 단계부터 시작되는 연줄 채용 등 기득권 세력의 횡포가 자신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공정 경쟁의 룰이 정착되면 우리 사회가 역동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제대로 시행되면 거래 비용을 낮추고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여 경제 전반의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김영란법은 부정부패에 찌든 대한민국을 리모델링하는 기회를 하늘이 부여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기회를 살리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몸과 영혼을 갉아먹는 '마당발' 흉내는 그만 내고, 공부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더 가져야 하겠다.

 

이런 생활 혁명을 통해 시민 각자가 '마당발 인재'에서 '진짜 일꾼'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김영란법 취지를 살리고, 한국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자료출처=조선일보/2016.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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